팀장님이 나보다 스무 살 어린데요?
팀장님이 나보다 스무 살 어린데요?
“팀장님이 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데요.”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충분히 나올 법한 말입니다.
말끝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을 겁니다.
걱정도 있고,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이 건드려질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내가 팀장이었는데 오늘부터는 나보다 스무 살 어린 사람에게 보고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머리로는 압니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직책으로 일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어제까지 부장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신입사원이 됐습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대리도 해봤고, 과장도 해봤습니다. 팀장도 해보고 부장도 해봤습니다.
수많은 보고서를 검토했고, 후배 직원들을 가르쳤고, 사람을 뽑아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퇴직 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첫 회의에 참석했더니 팀장이 말합니다.
“이번 주까지 자료 정리해서 저한테 먼저 보고해 주세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기분 나쁘게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상대의 얼굴을 보니 내 자녀와 비슷한 또래입니다.
그럴 때 사람의 머릿속에는 엉뚱한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저 친구가 회사 들어올 때 나는 이미 차장이었는데….’
아마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겁니다.
사람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그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젊은 팀장도 편할까요?
한번 자리를 바꿔보겠습니다.
35세 팀장이 있습니다.
새 직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이력서를 봤더니 58세입니다.
경력 30년.
전 직장에서는 부장까지 했습니다.
팀장 입장에서도 순간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내가 업무를 지시해도 괜찮을까?’
‘저분이 내 결정을 받아들일까?’
‘회의에서 내가 잘못 말하면 속으로 우습게 보지는 않을까?’
어쩌면 58세 직원보다 35세 팀장이 더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려워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쪽에서는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데….”
라고 생각하고,
반대편에서는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데….”
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스무 살이라는 숫자보다 그 숫자를 서로 얼마나 의식하느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팀장님”이라는 세 글자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입에서 잘 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팀장님, 이 자료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씨.”
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회사에서 팀장이면 팀장님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직급으로 불렸습니다.
김 대리, 이 과장, 박 부장.
그때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많아지는 순간 갑자기 상대방의 직급보다 나이가 먼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바뀌어야 하는 것은 호칭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스무 살 어린 사람’이기 전에 지금 이 회사의 팀장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스무 살 많은 사람’이기 전에 새로 합류한 동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단순해집니다.
문제는 어느 날 회의에서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팀장이 업무방식을 설명합니다.
듣고 있는데 이상합니다.
내가 이미 해본 방법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해봤습니다.
문제점도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 입이 근질근질해집니다.
“그거 해봐서 아는데 안 돼요.”
이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이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팀장은 업무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력의 길이를 비교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말을 바꾸면 어떨까요.
“비슷한 방식을 전에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부분을 먼저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가진 경험은 똑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말하는 방법뿐입니다.
첫 번째 말은 경험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끝내버립니다.
두 번째 말은 경험을 테이블 위에 하나의 자료로 올려놓습니다.
경험은 정답으로 꺼낼 때보다 참고자료로 꺼낼 때 더 오래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말이야…”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 경력자가 가장 자주 꺼내게 되는 회사는 어쩌면 지금 회사가 아니라 예전 회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게 했어요.”
“전 회사에서는 이 정도는 시스템으로 다 처리했습니다.”
“거기는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았는데….”
처음 몇 번은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듣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아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좋았으면 왜 자꾸 우리 회사와 비교하지?’
특히 대기업이나 규모가 큰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작은 회사로 옮겼다면 더 조심할 부분입니다.
사람도 적고 시스템도 다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당연했던 절차가 여기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경험을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 좋은 경험을 이 회사 크기에 맞게 줄여서 가져오는 것이 진짜 경력일 수 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10명이 하던 일을 이곳에서는 3명이 해야 한다면,
“왜 10명처럼 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기보다
“3명이 한다면 무엇만큼은 꼭 남겨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력은 과거를 복제하는 능력보다 현재에 맞게 변형하는 능력에서 더 빛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팀장이 나에게 묻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마 그때 기분이 조금 달라질 겁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30년 경력을 30분 동안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요. 두 가지 정도만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이야기만 합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관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직원’
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물어보면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
이 됩니다.
반대로 나에게도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나보다 스무 살 어린 팀장’
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가 보고하고 함께 결정하는 팀장’
이 됩니다.
아마 조직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런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프로그램 하나가 사람을 작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회의가 끝났습니다.
팀장이 말합니다.
“자료는 공유폴더에 올려주시고 메신저로 링크 주세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 회사에서는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면 됐습니다.
이럴 때 괜히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30년 동안 일했는데 파일 하나 올리는 방법을 몰라 옆 직원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처음 사용하니까 모르는 겁니다.
20대 직원도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라면 모릅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은 처음입니다. 한 번만 알려주세요. 다음부터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이 한마디면 됩니다.
한 번 배우고 메모해 두고 다음에는 직접 하면 됩니다.
고용24가 현재 운영하는 중장년 직업기초역량 증진교육에도 스마트 워킹툴, 디지털 소통도구 활용, MZ세대와의 소통, 조직 내 의사소통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결국 재취업 후의 적응은 직무기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업무방식과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가르치는 일이 많아집니다.
후배가 묻습니다.
직원이 보고합니다.
결재를 합니다.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에서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건 어떻게 합니까?”
“이 양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서는 누구에게 먼저 보고합니까?”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린 팀장에게 보고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 이상 누구나 한동안은 신입입니다.
30년 경력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신입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은 배우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신입입니다.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위치입니다.
한두 달이 지나면 스무 살 차이는 조금씩 흐려집니다
처음에는 나이가 보입니다.
팀장 얼굴을 보면 나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결정을 빨리 하는 사람인지, 꼼꼼한 사람인지, 책임을 피하지 않는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팀장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나이보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보고가 정확한지, 약속을 지키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는지, 경험을 필요한 순간에 꺼내놓는지를 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처음에는 크게 보였던 스무 살이라는 숫자가 의외로 작아질 수 있습니다.
대신 이런 것이 남습니다.
“저 사람하고 일하면 편하다.”
직장에서 꽤 좋은 평가입니다.
그래도 가끔 마음속에서 한마디가 올라올 겁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그럴 수 있습니다.
없애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말 뒤에 한 문장만 더 붙여보면 어떨까요.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왕년’과 ‘지금’이 연결됩니다.
내 경험도 살아 있고 현재 회사의 방식도 존중하게 됩니다.
어쩌면 세대 간 소통이라는 거창한 말도 결국 이런 작은 문장 하나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팀장님이 나보다 스무 살 어린데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나이를 잊으세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뻔합니다.
“무조건 팀장에게 맞추세요.”
라고 하는 것도 답은 아닐 겁니다.
나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30년의 경력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젊은 팀장이 현재 조직에서 쌓아온 경험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일하며 얻은 경험을 가지고 들어왔고, 그 팀장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이 회사의 경험을 먼저 가지고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버려야 같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직함은 두고 오되, 그 직함을 얻기까지 쌓은 경험은 가지고 오는 것.
그리고 새 회사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고, 묻고, 배우고, 필요할 때 내 경험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팀장의 나이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쯤이면 아마 이런 질문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겠지요.
“팀장님이 나보다 스무 살 어린데요?”
그냥,
“우리 팀장님인데요.”
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요.
참고할 만한 공식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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